publication, riso print, 49 pages, A5 size, 50 Copies, 2026



다시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것을 실현하기까지 꽤 먼 길을 걸었다. 그 모든 시간이 낭비였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우주의 먼지에게 시간 낭비 같은 말은 맥주잔을 앞에 두고 하는 농담 같은 거니까. 내가 마주한 들판에는 운석이 끝없이 떨어져 있었다. 내 운석을 만나기 위해 조금 오래 걸었을 뿐이다.
작년에서야 나는 내 불꽃이 아주 작다는 것을, 그래서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겨울은 유독 길었고 긴 글을 한 편 썼다. 동굴에서 나와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나갔다. 그 목소리는 처음엔 아주 작은 웅얼거림이었다. 매일 출근하기 두 시간 전에 일어나 그 목소리에 집중했다. 바다 속으로 잠수하는 것 같았다. 매일 새벽 물속에서 아른거리는 단어를 하나 쥐고 수면으로 올라왔다. 대부분의 날들엔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물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모은 단어들을 흰 종이 위에 배열했다. 그렇게 그린 그림 밖에 있는 제안은 모두 거절했는데, 그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커다란 흐름을 거역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고, 해야 할 도리를 저버리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 책은 그렇게 쓴 것이다. 도무지 이게 맞는 길인지 모르겠을 때. 스튜디오와 옥탑방 밖의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더 이상 분노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때. 스튜디오 책상 앞 창밖으로 보이는 오래된 집과 커다란 레몬나무가 허물어지고 뿌리 뽑힐 때, 그 땅을 깊이 파서 새로운 기둥을 박는 공사를 매 시간 지켜보면서. 아침 러닝 후 전봇대를 바라보다가 주저앉아 울면서. 그럼에도 매일 아침 우주를 믿겠다고 기도하면서 쓴 것이다. 전시를 마친 뒤엔 섬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우주를 만났다. 나는 더 이상 아침 기도문을 외우지 않아도 된다. 우주에게, 창조주에게, 천사에게, 운석에게, 바다에게, 나에게 항복했기 때문이다.
글은 한국어로 썼고 영어 번역본과 병치되어 있다. 아버지가 1990년에 공장을 세우며 찍은 필름과 내가 네아 이오니아 지구에서 찍은 필름이 포개져 있다. 인조대리석과 천연대리석에 대한 이야기, 잃어버린 고향과 새로운 고향, 허물어지는 것과 세워지는 것, 연결성, 덧없음, 그리고 반복. 흐릿한 실마리를 연결하고 목격하는 여정, 단지 그 하루하루가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은 무제가 아니라 [ ]이다. ‘터’와 가장 가까운 표현으로 골랐다.
그래픽디자인: 박나현
리소프린트: 슬립온잇프레스
편지: 이리니 푼데다키
리서치 도움: 바실리키 시포스트라토다키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컬처무브유럽
*소장 문의: kihyun.park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