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이게 마지막 컷이었어.”
혹시 한 장 더 담을 여분이 없을지 톱니바퀴를 돌려보며 말했다. 물가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동시에 탄식했다. 이 필름은 아무리 깊숙한 곳에 숨겨놔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겠구나.
“이 사진들, 1년 있다가 현상할 거야. 그때 이메일 할게.”
“لا 안 돼 —”
나는 기억에서 지워졌던 필름을 인화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러 같은 모양의 일회용 카메라만 구입하고, 27컷을 다 찍고 나면 연도나 장소 등 이름표를 붙이지 않은 채 서랍에 쌓아둔다. 그리고 때가 되면 손에 잡히는 카메라 두어 개를 사진관에 맡긴다. ‘때가 되면’이라는 말, 참 좋지 않나. 그건 시계나 달력으로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와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알게 되는 감각이다.
요르단에서의 한 계절을 기록한 카메라 하나, 필름 한 롤, 27컷의 사진. 이 일회용 카메라 안에는 금발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내가 있고, 연보라색을 좋아하던 E가 있고, E에게 반한 G이 있고, J를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K가 있고, 지금은 독일에 사는 A가 있고, 이제는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 Y가 있다. 우리 모두의 삶을 뒤흔들었던 그 계절의 마지막이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당일치기로 여행을 떠났다.
“사해에 가자.”
사해 Dead Sea를 ‘죽은 바다’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사해는 호수다. 지구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곳. 흘러 들어온 물이 흘러나갈 길이 없는 웅덩이. 시리아에서 발원한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를 지나고,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국경을 지나고 나면 사해, 그 종단 호수에 도착한다. 그동안 강이 싣고 온 많은 것들은 이 도착지에 가라앉고, 물은 천천히 증발해 날아간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사해는 염도가 아주 높은 물웅덩이가 되었다.
암만에서는 동틀 무렵부터 잠들기 전까지 하루에 여섯 번, 아잔이 도시에 울려 퍼진다. Fajr 새벽, Sunrise 해돋이, Dhuhr 정오, Asr 오후, Maghrib 해질 무렵, Isha 밤. 암만은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이고 언덕마다 모스크들이 흩어져 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무아진이 모스크의 탑에서 아잔을 부른다. 여러 개의 언덕에서 동시에 송출되는 아잔이 골짜기와 언덕을 타고 반사되면서 웅덩이 같은 도시가 메아리로 진동한다. 여러 겹의 목소리가 돌림노래를 하듯이.
그 소리가 너무 커서 하루에 여섯 번,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그 부름을 들어야 했다. 바쁜 미팅 중에도 말을 멈추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손을 보거나, 걷다가도 잠시 멈춰 살랑이는 부겐빌레아를 바라봤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그 노랫말 같은 부름, 그 메아리 속에 있으면 바람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진동이 점차 희미해지다가 사라지고 나면, 자동차 경적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새벽 아잔을 함께 들었던 사람이 있다. 이스라엘 국경에서 팔레스타인 방문을 거절당하고 요르단에 발이 묶여 있던 사람. 우리는 난간에 서서 맞은편 언덕을 따라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불현듯 무아진의 부름이 시작되었다.
“벌써 기도 시간인가 봐.”
그 소리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긴 침묵이 이어졌다. 우리가 그 무렵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그에게 내 옷을 선물했고, 그는 나에게 그의 그림을 선물했다.
모래 언덕이 부서져 내리는 길 아래 바다 같은 호수가 있었다. 그날따라 방문객은 우리 일곱 명뿐이었다. 우리는 낯선 별에 도착한 것처럼 사해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수천 년간 고여 있는 물 주변으로 소금 바위들이 흩어져 있었다. 도시마다 햇살의 질감이 다른 것처럼, 물도 저마다의 질감을 갖고 있다. 사해의 물은 그중에서도 처음 만져보는 아주 낯선 것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의 사주는 밝게 비치는 뜨거운 태양 아래의 깊은 호수 같은 거예요.”
손바닥 위에 사해의 물을 한 줌 올려두고 왜 이 말을 떠올렸을까? 그 진득한 밀도의 물이 태양을 머금고 반짝, 느리게 빛났다. 그 너머로 보이는 드넓은 수면. 그 위로 늦은 오후의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상했다. 물은 금빛이 아니라 은빛으로 물들었다. 웅덩이가 태양을 전부 다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곧 우리 일곱 명의 몸이 그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이 호수에는 물고기도, 수달도, 물풀도 없다. 아무도 없는 물속에서 우리는 까르르 웃었다. 사해의 정적 위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가고, 가라앉았다.
E는 올해 마흔 살 생일을 맞았고, 고양이를 떠나보냈다. A는 Y 이후로는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J는 런던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작년에 불현듯 베를린에 찾아왔던 Y은 이제 미술도 하지 않고, 당시 친구들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G은 늘 그렇듯 중동과 남미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당시 K가 일하던 미술관은 이제 문을 닫았고, 그의 소식은 모른다. 나는 머리가 많이 길었고,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이 노래를 사해로 향하는 길에 들었는지, 아니면 돌아가는 길에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끝없는 사막이 펼쳐지고 모래 언덕을 따라 굽이굽이 커브길을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 K가 이 노래를 틀었다. Caetano Veloso의 It’s a Long Way. 오래된 자동차의 지직거리는 스피커로 부드러운 기타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다 함께 따라 불렀다.
“It’s a long way- it’s a long- it’s a long way”
얼굴을 쓰다듬는 건조한 바람, 굽이치는 길,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It's a long, a long, a long, a long
이건 정말 길고, 길고, 길고, 긴
A long, a long, a long way
길고, 길고, 긴 길이야
It's a long way, it's a long
이건 긴 길이야, 긴,
It's a long, a long, a long
이건 길고, 길고, 긴
It's a long, a lo-long, a lo-long, a long, a long, a long
이건 길고, 길-고, 길-고, 길고, 길고, 길고
It's a long, a long
이건 길고, 긴
It's a long, a lo-long, a lo-long, a lo-long, a long
이건 길고, 길고, 길고, 길고, 긴
A long, a long, it's a long, it's a long way
길고, 긴, 이건 길고, 이건 긴 길이야
It's a long, a long, a long, it's a long way
(...)
Ozóio' da cobra verde
초록 뱀의 눈
Hoje foi que arrepare
오늘 나는 알았어
Se arreparasse há mais tempo
내가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Não amava quem amei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을거라는걸
(...)
Arrenego de quem diz
누가 말하든 사실이 아니야
Que o nosso amor se acabou
우리의 사랑이 끝났다는 말
Ele agora está mais firme
우리의 사랑은 강해졌어
Do que quando começou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
A água com areia
물이 모래와 함께
Brinca na beira do mar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놀고있어
A água passa, a areia fica no lugar
물은 흘러가고, 모래는 제자리에 남아있어
It's a hard world
힘든 세상이야
It's a hard world
힘든 세상이야
It's a hard world
힘든 세상이야
Hard, love, wind
험한, 사랑, 바람
E se não tivesse o amor
만약 사랑이 없었다면
E se não tivesse essa dor
만약 고통이 없었다면
E se não tivesse o sofrer
만약 괴로움이 없었다면
E se não tivesse o chorar
만약 울음이 없었다면
E se não tivesse o amor
만약 사랑이 없었다면
E se não tivesse? E se não tivesse?
만약 아무것도 없었다면? 아무것도 없었다면?
E se não tivesse?
아무것도 없었다면?
No Abaeté tem uma lagoa escura
아바에테에는 어두운 석호가 있어
Arrodeada de areia branca
하얀 모래에 둘러싸여 있네
No Abaeté tem uma lagoa escura
아바에테에는 어두운 석호가 있어
Arrodeada de areia branca
하얀 모래에 둘러싸여 있네
Arrodeada de areia branca
하얀 모래에 둘러싸여 있네
Ô de areia branca, ô de areia branca
오, 하얀 모래여, 오, 하얀 모래여
Ô de areia branca, ô de areia branca
오, 하얀 모래여, 오, 하얀 모래여
Ô de areia branca, ô de areia branca
오, 하얀 모래여, 오, 하얀 모래여
Ô de areia, ô de areia
오, 모래여, 오, 모래여
Ô de areia, ô de areia
오, 모래여, 오, 모래여
Ô de areia, ô de areia
오, 모래여, 오, 모래여
Ô de areia, ô de areia, ô de areia
오, 모래여, 오, 모래여
(...)
It's a long, a long, a long, a long
이건 길고, 길고, 길고, 길고
A long, a long, a long way
길고, 길고, 긴 길이야
It's a long way
이건 긴 길이야